못 살게 굴기

매일 수백 계단을 오르내리곤 하지만 가끔 운동을 더 한답시고 집까지 15분을 걸어가는 경우가 있다. 물론 지갑을 깜빡 잊고 가져오지 않았다든가 하는 경우는 제외하고 말이다. 역시나 mp3을 꺼내어 귀에 꽂고 일본어를 복습하거나 가요 몇 곡을 듣다보면 금세 집에 도착하곤 한다.

어제는 지갑과 mp3를 모두 갖고 오지 않은 날이었다. 일기예보에 비가 온다는 소리에 집을 나서기까지 계속 우산 생각만 했던 탓이었다. 아침에는 어차피 걸어서 병원에 가려고 했으니 알지 못했었지만 점심 시간에 그 사실을 알게되어 우리 학번 큰 형님께 거금 2500원을 빌려 들고 식사를 마치고 터덜터덜 병원을 걸어 나와야 했다. 막상 온다던 비는 오지 않고.

걸어가다보니 앞에서 리어카를 끌고 가는 할아버지가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했다. 할아버지께서는 느릿느릿 걸어가고 계셨기 때문에 내 걸음은 할아버지를 금방 다 따라잡게 되었다. 내가 할아버지를 앞지르기 직전 할아버지가 리어카를 멈추어 서서 허리를 추스리셨다. 곁눈질 해보니 할아버지가 끌고온 리어카는 아무것도 들지 않고 텅 비어있었다.

 

'할아버지도 참 기력도 없으실텐데 고생이 많으시네...'

하면서 지나가는데 근방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아, 거 참. 젊은 사람이 무슨 그렇게 엄살을 부린대. 어여 안 와?"

평상 위에서 쉬고 계신 한 무리의 어르신들이었다.

 

젊은 노인인가 나이든 청춘인가?

그러고보니 나는 아직 한참 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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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딸기 2011.04.04 06:26 신고

    ㅎㅎㅎ 짠유님은 그 할아버지들 눈에는 '갓난쟁이'로 보였을듯!
    근데, 일어 공부도 하시는군요.
    계단 수백개 오르내리기, 아마도 근무중에 엘레베이터를 사용 안 하신다는거겠죠?
    정말 좋은 운동을 거저!로 하시는군요. 역시나 현명하십니다! ^^

  • 그러고보니 정말 젊다 늙었다는 것도 상대적인 것이군요.
    얼마 되지도 않은 나이로 늦었다면서 많은 것을 포기하고 있는 제 자신을 반성하게 되네요.
    행복한 한 주 보내세요.

 

참치 통조림을 하나 샀다.

져녁 때가 되어 나름 기대하는 마음에 밥을 차린 뒤 반찬으로 먹으까 싶어 통조림을 꺼내려는데, 예전에 사다 둔 통조림이 하나 보였다. 왠지 새로 사다 둔 것은 일단 두고 지금은 그걸 꺼내 먹어야만 할 것 같았다.

결국 그 통조림을 손에 쥐고 먹기 전에 유통기한이나 확인하려고 이리저리 돌렸다.


03/09/12


'2012년 3월 9일까지'

다행히 아직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안심하며 그렇게 저녁을 먹고 난 뒤 무심결에 냉장고에서 생수를 꺼내어 마시다가 아까 그 통조림 떄문인지 유통기한이 또 생각나서 바로 확인해 보았다.


12/09/10 까지
10/09/10 제조


윗 줄만 보았을 때는 살짝 헷갈렸지만, 제조일을 표시해 놓은 덕분에 겨우 '2012년 9월 10일까지'라고 해석할 수 있었다. :D

 

그렇게 시험공부를 하다가 아까 통조림을 살 때 같이 사 온 초콜릿을 뜯어서 먹었다. 무려 반 값에 할인을 해서 덥석 사 온 것인데 자꾸만 유통기한에 또 신경이 쓰였다. 왠지 모르게 맛이 쓴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포장을 확인해 보니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10/11/10 까지

달랑 한 줄.

'2010년 10월 11일까지'인 것일까, '2010년 11월 10일까지'인 것일까?

벌써 다 먹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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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딸기 2010.10.23 19:08 신고

    ㅎㅎㅎㅎ 정말, 너무 웃었어요~~~~
    저 젤 위의 사진!! +.+
    그리고 젤 밑의 과연 어느쪽일까...? ㅎㅎㅎ
    여긴 보니까. "소비기한"과 "상미기한"(맛 있게 먹을수 있는 기한) 두종류의 표시가 되어 있는데, 헷갈린다는
    소비자들의 의견으로 뉴스에서 그 두가지의 의미에 대해서 일부러 전문가를 불러서 설명하더군요. ^^;
    "소비기한"은 가능하면 지키라는... "맛있게..."도 지키는게 좋지만, 지나도 큰 상관은 없다고...
    어쩐지 날짜가 지난것은 께름직 하긴 해요. 사실, 이전에는 저런 표시도 없었어도 잘 만 사먹었지만. ^^

    근데, 또! 시험기간 이시로군요. ㅠ.ㅠ
    무조건! 잘~ 치르시기를... 공부하기 딱 좋은 기후가 아닐까 싶습니다. ^^

    • 제조일자라고 우리나라에도 있는 것이 있어서 먹을 때 안심이 되기도 해요 :D
      뭐.. 아직 아무 탈 없었으니 생생한 걸 먹은거겠지요 ㅋ

      방금 시험 끝났습니다~!! ㅎㅎ

  • 나야 2010.10.24 12:54 신고

    3003년...ㅋㅋ뭔가요....ㅋㅋ

  • 아직까지 별 이상 없으시면, 그냥 좋은 쪽으로 생각하시길 ...
    시험 잘 보시고요. ^^

    • 마음 속에서 의심이 가니 먹으면서도 왠지 모르게 맛이 이상한 것 같고... 그래서요 ㅋ
      결국은 괜찮았답니다.

      그런데 오늘 오랜만에 로션을 바르려니 시큼한 냄새가.. 화장품에도 유통기한이 있는가봐요.

  • 2010.10.27 01:03

    비밀댓글입니다

 

* 아는 동창이 라디오에도 올려 채택되었던 이야기 *

아는 동창이 일병을 달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말년 병장인 고참과 함께 얘기를 하고 있었단다. 늘 그래왔듯이 동창은 별 얘기도 아닌데도 끄덕대고 맞장구 치고 박수도 치면서 잘 듣고 있다는 리액션을 하기에 바빴다. 그렇게 이 얘기 저 얘기하면서 대화는 점점 무르익었는데, 그러던 중 고참이 내뱉은 단어가 문제로 떠울랐다.

 

고참 : 아, 내가 아는 동생이 고등학교를 다니다가 그만 고퇴를 했다니까.

동창 : 에이, 고퇴가 뭡니까. 중퇴 아닙니까. 중퇴.

 

그런데 오히려 고참이 정색을 하고 말했다. 

고참 : 야! 중학교를 그만 두면 중퇴고, 고등학교를 그만두면 고퇴! 그것도 모르냐?

 

동창은 다시 아니라고 말했고 고참은 결국 옆에 있던 상병을 불러 세워 묻기에 이르렀다. 

고참 : 야. 고등학교를 중간에 그만 두면 뭐라고 그러냐?

 

그러자 그 상병은 한참 생각하더니,

상병 : 고퇴 아닙니꺼.

하고 가버렸단다.

 

그리고나서 얼마 후, 동창은 부대원들과 부대 뒷산에 올라갈 일이 생겼다. 물론 그 고참도 투덜대며 함께 산 정상에 올랐다고.

정상에 도착하자마자 부대원들이 귀퉁이로 우르르 몰려가 소리를 맞춰서 야~호~ 하고 소리를 지르니 몇 초 있다가 웅웅대는 소리가 되돌아 왔다.

 

이 때 그 고참이 마치 시인이 된 듯한 표정과 말투로 한 마디 했다.

고참 : 얘들아. 들리느냐? 이 아지랑이 소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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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미있는 고참이네요.
    봄날 아지랑이 보고는 뭐라 했을까 궁금해지는데요. ^^

    • 아마 '저기 메아리가 피어오르는 걸 보아라' 했겠지요 ㅋㅋ
      생각해보면 그 때 지나가던 상병도 참 웃겨요 ㅎㅎ

  • 무식과 시적인 표현 한끝차이라는 생각이....ㅎㅎㅎ

  • 아 밑에 사진 안나와요>>
    전 아직 군대를안가봐서 잘 공감이 안되네요:Dㅎㅎㅎ
    아 지금 에세이 빨리 써야되는데,,,,,,,저는 또 딴짓을ㅋㅋㅋㅋㅋㅋㅋ

    • 지금쯤이면 다 쓰셨겠죠? ㅎㅎ
      아, 참 음악 파일은 저녁에 집에 들어가면 보내드릴게요 ㅎㅎ 그런데 집에 9시가 되어야 들어간답니다 ^^;;

 

본문과 관련 없는 사진입니다

 

9월의 첫 월요일, 한 초등학교 2학년 교실에서 반 전체 아이들이 복도에 나와 짝지를 바꾸고 있었다. 남녀 아이들이 각각 키 순서대로 한 줄씩 서서 해당하는 순서대로 같이 들어가서 앉는 것이다. 좋든 싫든 간에 아이들은 각각 해당되는 자리에 앉았고 낯선 자리와 낯선 짝지 때문인지 교실에는 묘하게 잠잠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그 때 선생님께서 맨 뒤에 앉은 남학생을 불러 둘째 줄에 앉은 여학생과 자리를 바꿔 앉으라고 했다. 그렇게 바꾸어 앉으니 반 전체를 통틀어 남자끼리 앉은 짝지는 그 두 명 뿐이었다. 가만히 보니 뒤에서 옮겨온 학생은 성실하고 공부도 잘한다는 학급 반장이었고, 앞에 앉은 학생은 학교에서 내내 떠들고 까불며, 좋게 말하면 수업 분위기를 활발하게 하고 다르게 말하면 분위기를 망치는 학생이었다. 초등학교 2학년 아이들이 보기에도 단번에 말썽부리는 학생을 고치기 위해서 일부러 자리를 고쳤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선생님께서 말썽쟁이 학생한테 말했다.

"이만배, 반장 옆에 앉아서 어떻게 공부하고 평소 자세가 어떤지 보고 좀 배워라."

그리고 반장에게는 쟤가 계속 떠들어도 받아주지 말고 공부도 가르치라는 당부를 했다.

 

그 날 이후 어머니들 사이에도 이 소문이 퍼졌다. 하지만 만배 어머니는 다르게 말했다.

"아니, 반장 애가 얼마나 소심하고 말도 못하면 우리 애를 거기다 앉혔을까. 선생님이 오히려 우리 애를 보고 활달한 성격을 배우라고 그렇게 앉힌거네."

이 말을 듣고 보니 또 틀린 말은 아닌 것 같기에 어머니들은 다시한 번 더 수군거렸다. 이제는 과연 둘이 같이 지내면서 누가 누구를 보고 따라갈 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었다. 선생님 의도대로 만배가 조용해질지 아니면 반대로 반장 성격이 떠들썩하게 바뀔지.

마치 이제는 반장 어머니와 만배 어머니의 대결이 된 것 같다. 어떤 결과가 나올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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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딸기 2010.09.11 10:40 신고

    거창하게 말하면, 어느쪽이건간에 인생이 바뀌는 만남이 될런지도 모르겠군요.
    정말, 저 아무렇지도 않게 보이는 작은 우연으로(필연 이겠지만) 우습게 다른길로 접어드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는 느낌이 들어요.
    묘~하게 생각케 하는 글. ^^

    • 어른들께서 누누히 친구 잘 만나라고 하시는 얘기가 떠올랐어요. 딸기님 말대로 저 아이들이 어떤 영향을 받아서 지금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지 기대되네요. :D

  • ㅎㅎㅎ 서로 상생하는 관계가 되기를 바랍니다 .
    꼭 누가 누군가를 따라가지 않아도 같은 나이에 같은 반 친구니까 서로 닮아가면 재밌겠어요 ㅋ

    • 그렇지요? 저도 어느 한 쪽으로만 치우치지 않고 양쪽을 적절히 닮아갔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

      그나저나 영아님 블로그 정말로 엄청 멋지시네요 !!

  • 전 만배 어머님의 생각이 참 명쾌하다고 생각해요 ㅋㅋ
    만배가 아인슈타인 같은 사람일지도 모르는 바입니다!

    • 그렇죠? ㅎ 보통 엄마들 같으면 약간 의기 소침해질 거라고 보통 생각할 것 같은데 의외의 당당하고 또 다른 생각에 놀랐답니다. ㅋ
      나중에 만배와 연락이 닿게 된다면 어떻게 자랐나 보고 싶어져요 ^^

  • 어떤 결과가 일어날 것인지 무지 궁금해집니다.
    놀기 좋아하는 초등학교 2학년임을 감안하다면
    반장에게 너무 큰 부담을 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드네요. ^^

    • 저도 같은 생각을 했어요.
      하지만 생각이 그렇게 깊지 않은 2학년임을 또 감안한다면 금방 잊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답니다 ㅎㅎ

 

머리를 한 번에 그리 많이 자르는 편이 아니기에 머리를 깎아도 알아보는 사람도 별로 없건만, 더운 날씨에 왠지 자꾸만 거울 속의 머리가 산발인 것만 같이 보이는 통에 이발을 감행했다.

"머리 길어봤자 너도 답답하고 보는 사람도 답답하지."

하고 들리지 않는 어머니의 잔소리도 어디선가 들리는 듯 했다.

 

근처 가까운 곳에 가서 의자에 편히 앉아 살짝 눈을 감고서 디자이너의 손길에 머리를 맡긴 채 깊은 명상에 빠져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가위 소리가 크게 들리는 듯 싶더니 순간 어마어마한 고통이 몰려왔다.

 

"아앗~!!!!!!"

 

"손님, 괜찮으세요? 정말 죄송합니다."

 

눈을 뜨고 돌아보니 당황한 기색이 역력해보이는 디자이너가 허리를 숙여 죄송하다며 사과를 하고 있었다. 손으로 통증이 느껴지는 곳 언저리를 더듬으니 손에 피가 묻어나왔다. 아마도 가위로 귀를 살짝 집은 것 같았다.

 

"손님, 죄송합니다. 많이 다치셨어요?"

 

곧이어 내 옆으로 원장으로 보이는 분이 오셔서 내 귀를 확인했다. 사실 내가 반응이 너무 커서 그렇지, 그리 많이 다친 것은 아니었다.

 

"아, 이 정도는 뭐. 괜찮겠네요."

"아 그러세요? 다행입니다. 앞으로는 이런 일 없도록 주의하겠습니다."

 

그러자 약간 안도하는 듯한 원장과 디자이너. 거의 다 수습이 끝날 때 쯤 원장이 말했다.

 

"사실 이 정도 일은 흔한 편이에요. 이보다 더 심한 경우도 많이 있거든요. 며칠 전만 해도..."

 

이 말을 듣고 안심을 해야 하는데 순간 망설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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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결에 본 시계는 벌써 47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 !!
  언제 시간이 이렇게 됐지?! "
 

 

나는 순간 아연실색하며 한 쪽 팔로 어깨에 가방을 들쳐메고 다른 손으로는 열쇠와 지갑과 휴대폰을, 한쪽 발로는 선풍기를 끄는 동시에 구두를 신으며 어깨로 문을 밀며 밖으로 뛰쳐나갔다. 이러다가는 정시까지 병원에 도착하기에 시간이 매우 빠듯할 것이 분명했다. 더군다나 한참 달려나간 사거리에는 이미 택시를 잡으러 서 있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다행히 내 옆에 서 있던 남자는 곧이어 멈춰 선 다른 승용차를 타고 가 버렸고, 대각선 건너편의 학생들은 스쿨버스를 탔다. 그 사이에 다른 택시가 와서 맞은편의 아주머니와 딸을 태우고 갔으니 다음 번 택시는 내가 탈 것이었다.

하지만 어느새 시간은 9분 밖에 남지 않았고, 택시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내가 서 있는 편에서 오는 택시는 빈 차가 아니었고, 그나마 보이는 빈 차는 모두 건너편에서 오는 것들이었다. 사거리에 워낙 차가 많이 밀려서 건너편에서 차를 돌릴 수도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차라리 빙 돌아가더라도 건너편에서 우선 택시를 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건너편으로 가니 이번에는 내가 아까 서 있던 곳에 빈 택시가 줄줄이 지나가는 것이 아닌가. 이제 택시를 타지 않으면 정말 늦을 것일터. 그렇게 다시 한 동안 택시가 뜸하다가 건너편 차선에서 저 멀리 빈 택시 한 대가 들어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더 이상 망설일 시간도 없어서 얼른 길을 건너려는 순간 왼쪽에서 자동차 경적 소리가 울렸다.

 

"빵빵!"

 

돌아보니 천만다행히도 빈 택시가 멈춰 있었다. 반가움에 얼른 택시에 올라탔지만 시간은 이미 정시를 넘긴 시각이었다. 그래도 이렇게라도 가는 것이 어디냐 싶어 한 숨을 돌렸다. 그런데 기사 아저씨께서 말을 거셨다.

 

기사 : 저기, 학생. 아까는 저 쪽에서 서 있지 않았어요?

찬유 : 아, 네. 어떻게 아세요?

기사 : 아 아까 지나가면서 보니깐 이 쪽에 서 있더라고. 근데 차를 돌릴 수가 없어서 저~기 앞에서 돌려서 왔거든? 그런데 또 건너가 있는거야. 그래서 다시 또 돌려서 오니까 이제 또 다시 건너갈라고 그래서 내가 빵빵거린거야.

그리고 또 한 마디 하셨다.

기사 : 학생, 뭘 하든지 자꾸 왔다갔다거리면 둘 다 아무것도 못해. 잘 골라서 한 쪽에 진득하게 붙어 있어. 그게 더 나아.



 

순간 나를 포함한 사람들이 얼마나 순간순간의 선택 앞에서 간사해질 수 있는지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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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딸기 2010.08.06 08:10 신고

    휴~ 그 상황을 생각하니 읽으면서 저까지 초조.
    한 우물을 파자~!!! 알면서도 닥치면 어쩔수 없이 저 상황이 되는것 같애요.
    근데, 집을 뛰쳐 나가실때의 저 순간액션에 웃음이. ^-^ (발로 선풍기 끄기! ㅎㅎ)

  • 와. 이 이야기 음. 괜찮은데요!짧고 명쾌해요.

  • 마을버스와 일반버스사이를 왔다갔다 하던 저의 모습과 비슷하네요. ^^
    한 순간도 선택 없이 살 수 없는 사람의 운명과 함께,
    여기저기에 흔들릴 수밖에 없는 사람의 모습도 보입니다.

 

 

"아니,"

분위기 좋던 음식점에서 갑자기 어떤 남자가 산통을 깨는 소리가 들렸다.

"그렇게 내가 싫다는 여자는 처음이라니까? 참 나, 이해가 안돼."

주위를 보니, 멀지 않은 자리에 앉은 남자 셋이 이미 바닥이 보이는 감자탕 그릇을 긁어대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 중에 유난히도 시끄럽게 떠들던 그 남자를 다시 보니 같은 남자가 보기에도 키도 중간, 얼굴도 중간. 그렇다고 인상도 썩 좋아보이지만은 않았고 먹기는 무지 잘 먹는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는데 문득, '아, 돈이 많은가?' 하는 생각도 잠깐 했다.

열띠게 계속 떠드는 남자에 비해 옆의 남자들은 별 관심도 없이 건성으로 받아주면서 숟가락으로 냄비 바닥을 긁기에 여념 없었다.

"그래도 그렇지. 이래봬도 내가 첫 인상은 좀 그래도 계속 보면 정도 가고 호감도 간다고 다들 그런다니까?"

이 말에 물수건으로 입 정리를 하고 지갑을 챙기던 다른 남자가 한 마디 했다.

"그렇겠지. 근데 첫 인상이 너무 안 좋아서 다시 볼 일이 없으니 문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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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동안 계속 내리는 장맛비가 거의 끝나간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이제야 어디 맘껏 놀러 다니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고, 곧바로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닌게 아니라, 비가 거의 그쳐가니 비가 한창 올 때 보다 날이 더운 것은 물론이고 습도가 높아서 짜증이 날 것 같은 날이었다.

이런 날에는 버스를 잘못 타면 꽤나 위험하다. 버스 기사가 '비가 왔으니 시원하겠지.'하는 생각으로 냉방을 하지 않으면 콩나물 시루안의 승객들은 나가서 일을 보기도 전에 버스에서 물에 빠진 생쥐마냥 헉헉대다가 땀에 외모도 망치고 기분도 잡치게 마련이다. 날은 덥고, 목적지는 종점과 가까운데 버스는 만원이라 좁아터진 공간에서 서서가야 하는데다가 옆에는 모르는 사람의 젖은 우산이 내 바지를 적시고 마침 창문에 김이 서려서 앞도 보이지 않으면 꼼짝없이 버티면서 '기사는 왜 이런 날씨에 에어컨을 안 트는거야!!' 하면서 저마다 속으로 기사만 원망하게 된다.

다행히도 내가 탄 버스는 들어서는 순간 사람은 많았지만 에어컨이 빵빵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이군.' 

하며 앉을 자리는 없었지만 바깥 풍경도 시원하게 보이고 약간 쌀쌀한 감이 들 정도로 시원해서 좋았다. 났던 땀도 다시 들어가서 보송보송해 지는 느낌. 정류장에서 막 승차한 사람들이 개운한 표정으로 땀 닦던 손수건을 주머니에 넣고 여유롭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오히려 바깥에 내리는 것이 싫어질 정도였다.

그 때 버스가 다음 정류장에 멈추고 한 아주머니가 탔다. 휘적휘적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어 한 번에 넣고는 안으로 얼마 들어가지 않고 서서 기사쪽으로 몸을 돌려 한 마디 했다.

아줌마 A : 아따. (팔뚝을 문지르며) 안 춥는겨? 기사양반. 춥지도 않능겨? 뭔시리 에어컨을 이리 틀어싼능겨.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올려서 버스 안의 승객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다들 '참을만한데 왜 타자마자 저러시나.'하는 눈초리였다. 기사가 미동도 않자 아주머니가 한 마디 더 하시려고 숨을 들이쉬는데 보다 못한 다른 아주머니가 한 마디 하신다.

아줌마 B : 아. 그만하소. 원래 이런 날에는 이렇게 틀어야 창문에 김이 안끼는 거라. 딴 사람들은 잘만 참고 가는데 쫌만 참아보소.

아주머니도 지지 않는다.

아줌마 A : 아, 다른 사람들은 안 춥는겨? 이상하다.. 다들 젊어서 그런가배. 젊어서 그렇나? 내가 나이가 들어서 그렇나?

아줌마 B : 아따. 말 많다. 몇 살인데? 올해 인자 몇이고?

아줌마 A : ... 뭘 또 넘의 나이를 다 알라카노. 그럼 니는 몇인데? 많이 먹었나? 잉?



두 분의 대화가 결국 나이 대결로 치닫고 승객들은 조용히 지켜만 볼 뿐이었다. 겉보기에 비슷한 연령대일 것 같은 아주머니들은 절대 나이를 먼저 가르쳐 주지 않으려 했고, 한참동안 옥신각신 하다가 결국 먼저 물어본 아주머니가 대답을 했다.

아줌마 B : 내는 올해 60이다. 됐나?

이 말을 들은 아주머니.

아줌마 A : 60?  아직 얼라네, 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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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네 아버지가 하는 치과가 있다고 해서 한 번 갔었다. 서로 면식도 채 서지 않은 사이건만 이럴 때는 굳이 챙기게 되는 것이 '친구'라는 애매모호한 단어인 것일까. ^^;; 그 '친구'네 치과는 알고보니 우리 집과 5분 밖에 안 되는 거리라는 사실에 다시한 번 놀라며.. 들어가니 치과 특유의 냄새와 함께 들리는 소리. 치과 맞다.

접수를 대충 하고 이미 와 있는 사람들 사이를 헤집고 앉아서 잡지를 뒤척뒤척.. 거리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기다리는 사람들이 꽤 많아졌다.

'그나마 일찍 와서 다행이네.. '

하고 내 차례 되기 전까지 읽고 있던 기사나 얼른 읽어야겠다는 생각에 잡지를 다시 빠르게 읽어내려갔다. 그러던 중 카운터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카운터 : May I help you? 


앉아 있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카운터로 쏠렸고 한 외국인이 카운터에 서 있었다. 영어로 물어보았으나 꽤나 유창한 한국어로 대답하는 외국인이었다.

 

외국인 : (서툴게) 아. 여기 김 치과 맞지요??

카운터 : 아, 네 ^^

 

외국인의 의외스러운 반응에 살짝 놀라기도 했지만 카운터의 반응 역시 궁금해져서 읽고 있던 기사를 내버려두고 그들의 대화에 이목을 집중했다.

 

외국인 : 제가 뭘 좀 사러 왔는데요...

          여기 김치 있어요??

카운터 : -_ - ??!! 

사람들 : -_ - ??!!


'웬 김치?'

순간 카운터도 보고 있던 사람들도 모두 다 침묵했다. 무슨 조화란 말인가 ㅎ

 

카운터 : 여기는 치과인데 여기서 김치를 찾으시면 어떡해요? ^^;


아직도 영문을 모르는 외국인이 대답했다.

외국인 : 아 여기 '김치과' 라면서요. 그래서 왔거든요? 여기 김치 없는 거에요? 


사람들은 그제야 웃음을 터뜨렸고 카운터에서는 알기 쉽게 설명을 해서 외국인을 돌려보낼 수 있었다.

그 외국인은 얼마나 김치를 먹고 싶어했던걸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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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기가 끝나고 지도교수님을 찾아뵈었다. 개인적으로도 무척 바쁘신 분인데 일부러 찾아오는 나를 거절하지도 않고 챙겨주시는 것이 너무나 고맙고도 한편으로는 죄송한 일이다. 이런 까닭에서일까 이렇게 무슨 일이 있을 때에만 학기당 두 세번 찾아뵙게 된다. 특히나 특별한 모임 때가 아니면 이렇게 일부러 찾아오는 일도 드물기에 어쩌면 이 "장학금 신청서"의 지도교수 사인란은 학생이 지도 교수님을 직접 찾아가서 만나볼 수 있도록 하는 바람직한 면이 없지 않아 있다는 생각을 한다.

 

한 번은 개인적으로 바빠 기말고사가 끝난 지 일주일 만에 교수님 연구실에 찾아갔었다. 되도록 한가하실 것 같은 시간에. 도착해서 숨을 가다듬고 연구실 문을 노크하는데,

"똑, 똑, 똑"
"...."


아무런 응답이 없다. 혹시 병원에서 진료중이신가 알아보았지만 병원에도 계시지 않았다. 난감하다. 사실 오늘 장학금 신청을 끝내고 저녁에 집에 내려가는 버스표를 이미 끊어두었는데 언제까지 기다릴 수도, 그러자니 장학금 신청을 포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래도 혹시나 하며 30분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기말고사가 끝나 인적없는 학교에 반가운 동기가 나타났다.

 

찬유 : 어? 어쩐 일이야?

동기 : 나? 장학금 신청하는 것 땜에.

내가 알기로는 동기의 지도 교수님께서 지금 학교에 안계신다. 그런데..?

찬유 : 교수님 안 계시지 않아?

동기 : 아. 그래서 과 학과장님께 받으면 된대서 지금 갈라고.



이 말에 급했던 나는 같이 과 학과장님을 찾아갔다. 과 학과장님은 상당히 권위적이고 까다로우신 분이라 소문이 자자했지만 지금같은 상황에서 따질게 뭐 있나 싶었다. 

"똑, 똑, 똑"
"..... 들어와요."

(조심히 들어가서 인사를 꾸벅...)

학과장님 : 무슨 일이야?

동기 : (자초지종을 대충 설명했다.) 

학과장님 : ('아, 알았다.'하는 표정) 학생, 지도 교수님이 누구지?

동기 : 네, OOO교수님이세요.

학과장님 : 음.. 그래. 이번에 학점이 잘 나올 것 같나? 지난 학기 학점이 어떻게 되나?

동기 : 4.3x 입니다.

순간 학과장님 얼굴에 놀라는 빛이 역력했다. 

학과장님 : 오. 공부 잘하는구만. 이번에도 받을 수 있겠네? 
               ... 그래 학생 건은 내가 허락해 주지.

 

그러고 나서 이제는 동기가 뒤로 빠지고 이제 나를 쳐다보고 계신 학과장님. 

학과장님 : 학생은?

나는 순간, 뒤에 서 있는 동기와 엄청난 비교와 상대적인 자괴감을 느꼈지만 한치의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찬유 : 3.94 입니다.

학과장님은 잠시 나를 바라보셨다.

학과장님 : 아니, 지도 교수님이 누구시냐고.


 

순간, 나는 어디엔가 숨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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